활동

제목글리벡 약가협상 결렬, 무엇을 의미하는가2009-04-17 00:00
이현옥/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작년 환자·시민·사회·인권단체들이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100mg의 약값이 너무 비싸다며 환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약값을 인하해달라는 요청을 보건복지가족부에 했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는 공단으로부터 글리벡 제조사인 노바티스와 약가협상을 다시 하라는 통보를 했고, 이 절차에 따라 지난 4월 6일까지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는 약가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제약사는 글리벡 약가가 비싸지 않으므로 인하할 수 없고 이에 대응해 소송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공단과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제 남은 절차는 보건복지가족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서 약가를 직권조정하는 과정만 남았다.

과거 기적의 신약이라고 불리웠던 글리벡. 그러나 글리벡 약값은 그 명성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폭리를 취해왔다. 글리벡 100mg의 가격은 한알에 23,045원이다. 보통 백혈병 환자들이 하루에 글리벡을 4~6알 먹는다고 했을 때 하루 약값만 약 9만원에서 14만원 정도 든다. 한달이면 270~ 420만원, 일년이면 최소 3300만원에서 최고5000만원에 이른다. 물론 환자 본인부담이 10%이고, 2002년 약값이 결정될 당시 노바티스가 환자의 부담이 높으니 자신들이 환자부담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해서 당장 환자들이 내는 돈은 없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에서 글리벡 약값의 90%를 부담하고 있으니 결국 건강보험료는 내는 환자와 국민들의 부담은 엄청난 셈이다. 그럼에도 글리벡은 2002년 약값이 결정된 이후 한번도 가격이 인하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환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왜 글리벡 약가 인하를 요구하는가. 그 이유는 글리벡이 바로 한국의 의약품 정책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과거 약가산정의 기준이었던 선진 7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을 기준으로 삼은 ‘A7평균조정가‘의 문제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가장 높은 약가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들을 기준으로 삼은 글리벡 약값은 한국사회가 감당하기에 너무 비싸다. 그런데 2006년까지 한국에 들어온 소위 “혁신적 신약”은 모두 이 기준으로 약값이 책정되었고 이 비정상적인 약가가 국민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2007년부터 복지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했으나 이미 건강보험에 등재되어 있는 의약품은 제외되어 여전히 A7평균조정가가 남아있다.

둘째는 약가재평가 기준의 문제다. 약제비 적정화방안의 시행으로 신약 등재시에는 A7평균조정가 기준이 사라졌지만 3년마다 실시하는 약가재평가 기준에는 여전히 A7평균조정가가 살아있다. 글리벡은 2007년 약가재평가 대상이었으나 A7평균조정가 기준으로 인해 약가인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글리벡의 비정상적인 약가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A7평균조정가’기준 때문에 조정되지 못한 것이다. 과거 높이 책정된 약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기제가 없다는 점이 두 번째 문제다.

셋째는 제약사가 약을 공급하지 않으면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문제이다. 글리벡을 생산하는 노바티스사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환자들의 철중독 예방과 하루에 글리벡 100mg을 몇알씩 먹어야 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글리벡 400mg을 생산하고 복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는 글리벡400mg을 공급하고 있지 않다. 작년에 환자와 시민사회단체에서 글리벡400mg의 공급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약사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 이유는 글리벡400mg의 약값이 현재 함량비교가로는 약 57,000원 정도로 매우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글리벡 400mg 공급은 환자들의 건강과 편의성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측면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셈이다. 2007년 한 해만 보더라도 글리벡 400mg이 공급되었다면 약 220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으며 이는 2007년 글리벡 총 보험청구액 720억의 30%에 육박하는 비용이다. 이렇듯 건보 재정절감과 환자들을 위해 글리벡400mg이 꼭 필요하지만 제약사가 공급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 대안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허가받은 백혈병 2차 치료제 스프라이셀 때문이다. 스프라이셀 가격은 글리벡 약가를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비정상적인 약가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 결정되는 의약품의 가격 또한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글리벡 문제는 단지 글리벡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가격의 제 2, 제 3의 글리벡’을 탄생시켜 지속적으로 약가가 높아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건강보험공단과의 협상결렬로 이제 글리벡 약가인하는 약제급여조정위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글리벡이 내포한 한국 의약품의 총체적인 문제를 분명히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에서도 이미 글리벡 가격이 인하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해왔다. 만약 글리벡 약가인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보건복지가족부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 환자와 시민사회단체들은 하루빨리 비정상적인 기준으로 결정된 글리벡 가격이 정상화되고 우리의 건강보험재정이 허튼 곳에 낭비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