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질병은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제도는
국적을 가른다: 이주민과 함께하는 건강세상 2회차 후기 안녕하세요, 건강세상네트워크 인턴 김온누리입니다. 지난 1회차 기고문을 통해 이주 노동자와 미등록 이주민을 향한
'불법'이라는 언어적 낙인, 그리고 한국의 기초 산업을 지탱하면서도 죽음조차 평등하지 못했던 가혹한 일터의 구조적 모순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배움이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거대한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어 진행된 2회차 강의는 그 모순이
'의료 현장'에서 얼마나 구체적이고 잔인한 벽으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지역사회와 민간 의학이 어떻게 연대하고 있는지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신천연합병원 마을건강센터의 실천을 중심으로 마주했던 치열한 현장의 기록을 이어갑니다. 1. 존재의 증명을 넘어 건강권으로: '시흥 아동 확인증'과 프로젝트
169 정식 혼인 관계 외의 출생 등 법적 한계로 누락된 국내 아동과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그동안 공적 스크린에 잡히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시흥시의회와 지자체, 시민사회의 삼자 협력으로 '출생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되었고,
아이들에게 공적 존재 증명인 '시흥 아동 확인증'이 발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2025년부터는 유니세프와 JB금융그룹의 후원, 지역
의료기관의 연대로 '프로젝트 169 시흥'이 가동 중입니다. 이 확인증을 가진 아이들에게 건강보험 자격에 준하는 본인 부담률을 적용해 즉각적인
의료 치료를 보장하는 프로젝트는, 존재를 공적으로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 권리가 실제 건강권 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2. 단 한 달의 체납이 만든 벼랑 끝, 건강보험의 불평등한 지침 질병은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제도는 국적을 엄격하게 가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등록 외국인과 동포(H2, F4
비자 등)에게 적용되는 건강보험 체납 지침은 굉장히 차별적이었습니다. 내국인은 건강보험료를 6개월 체납해야 자격이 제한되고 사후에 납부하면 소급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외국인은 단 한 달만 밀려도 그 즉시 자격이 정지되며 추후 체납금을 내더라도 소급 보장을 받지 못합니다. 이 가혹한 한
달의 규칙 때문에 수많은 등록 외국인이 아주 잠깐의 경제적 위기로 건보 자격을 잃고, 치료 지연을 겪거나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수술을 받는 극단적인
위험으로 내몰립니다. 정부 정착 복지에서 배제된 채 건강보험 체납과 치료 포기, 알코올로 인한 건강 문제의 악순환에 빠진 북한 이탈 주민 출신
무국적자들의 현실 역시 이 비정한 제도적 불평등이 낳은 비극이었습니다. 3. 3억 원의 치료비와 1회 50만 원의 투석,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무게 현장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수치들은 이주민들이 마주한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하게 했습니다. 에티오피아 반정부
시위 피해로 입국한 난민 신청자의 만성 신장병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내국인은 산정특례를 받으면 투석 비용의 5%만 본인이 부담하지만, 외국인은
배제되어 1회 투석마다 50만 원 이상의 일반 수가가 청구됩니다.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치료의 비용을 민간 재원으로만 버티기엔 역부족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도네시아·베트남 국적 부부에게서 태어난 24주 6일 초조산아의 사례였습니다. 심장과 망막 수술, 5개월간의 인큐베이터 입원으로
청구된 병원비는 무려 '3억 원'에 달했습니다. 내국인은 인큐베이터 비용이 전면 급여화되었지만, 미등록 외국인은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의료비 폭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4. 행정적 폭력의 치유와 젠더화된 보건 위기 발제는 국가와 행정이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이주민의 위기도 짚어냈습니다.
2015~2017년 법무부 공무원들이 난민 면접 조서를 허위로 복사해 붙여넣었던 거대한 행정 폭력 사건의 피해자에게, 마을건강센터 인권 클리닉은
고액의 MRI 검사비와 사법 제출용 소견서를 지원해 2024년 2심 승소와 난민 지위 획득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의료가 어떻게 사법적 구제의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위기는 이주민의 성별에 따라서도 다르게 각인되고 있었습니다. 유학이나 결혼 비자로 입국한 여성들은
출산 후 학업 중단, 언어 장벽, 독박 육아와 가정폭력 속에 미등록 상태로 추락하며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반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성 이주민들은 무리한 노동으로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되거나 고립감으로 인한 알코올 의존 경향을 보였습니다. 정서적 장벽이 높은 여성 양육자들을
위해 언어를 거치지 않는 '비언어적 미술 상담 치료'를 대안으로 도입한 현장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5. 후기를 마무리하며 지난 1회차에 이어 이번 2회차 강의를 통해서도, 이주민 건강권이라는 화두가 단순히 시혜적으로 베푸는 '의료적
자선'의 문제가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고, 일상에서 서로를 이웃이자 동료 시민으로 승인하는 '정치의 문제'이자
'연대의 과제'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회차의 배움 속에서도 건강세상네트워크 인턴으로서 성실히 기록하고 즐겁게 연대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