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7월 3일, 산송장 취급을 당했다. 뇌가 반쪽이 없어진 것 마냥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약회사들은 하나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돈’만 밝히는데 우린 매번 같은 일을 겪고도 깜짝 깜짝 놀랄까? ‘피도 눈물도 없는’ 로슈 사장의 태도에 암담했던 것일까 아님 절벽을 오르기에 앞서 그 높이를 가늠하기위해 잠깐 멈춰 섰던 것일까?
“약이 필요한 환자를 앞에 두고 돈 없으면 말고 라고 말하는 걸 그냥 둔 게 분해죽겠어.” 가브리엘의 말을 듣는 순간 ‘얼음 땡’놀이마냥 우리가 왜 싸우는지 다시 생각이 났다. 가브리엘은 에이즈약 ‘푸제온’을 눈앞에 두고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했었다. 2006년 가을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외국의 구호단체에 수소문을 했다. 다행히 에이드 포 에이즈(Aid for AIDS)라는 미국의 구호단체로부터 푸제온을 공급받아 가브리엘은 살아났다. 가브리엘은 ‘생명에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고 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할 권리라고.
로슈는 2004년에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에 에이즈약 푸제온을 연간 3200만원에 보험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환율로 환산해보면 미국에 요구한 가격과 맞먹는다. 복지부가 연간 1800만원으로 보험약가를 결정하자 로슈는 약값이 싸다며 공급을 하지 않았다. 로슈는 다시 2005년에 연간 2500만원으로 약값을 올려달라고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2007년에 연간 2200만원으로 신청했다. 올해 1월 건강보험공단과 로슈가 푸제온에 대한 약가협상을 벌인 결과, 약값을 올려줄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났고 로슈는 여전히 공급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시장경쟁 논리에 의해서 정부가 의약품의 공급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유시민 전 장관이 한미FTA로 인한 약값 상승 등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약제비적정화방안은 약값기준도 없이 제약회사가 부르는 약값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고, 제약회사가 공급거부를 해도 대책이 없는 제도이다. 약제비적정화방안 시행 후 첫 사례였던 백혈병치료제 ‘스프라이셀’의 약값은 연간 4000만원으로 결정되었다. ‘스프라이셀’의 사례처럼 제약회사가 원하는 약값으로 맞춰주거나 ‘푸제온’처럼 눈앞에 두고 죽어가거나 둘 중 하나이다.
7월 3일, 우리는 ‘푸제온’을 3년이 넘도록 공급하지 않는 이유와 푸제온 약값이 왜 비싼지를 듣기 위해서 로슈 사장을 만나러 갔다. 로슈가 모 언론에서 밝힌 대로 연간 2200만원으로 푸제온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환자들은 푸제온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로슈는 의약품의 공급여부 결정은 ‘구매력’에 따른다고 말한 적 없고 ‘needs(필요)'에 따른다고 말했다. 로슈가 말하는 need는 로슈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도록 준비가 된 시장을 의미할 뿐 푸제온에 대한 ’need'가 절박한 가브리엘의 얘기를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었고, 생산과정이 복잡하여 푸제온의 약값을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온 것에 대해서는 ‘연구개발비와 생산비용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대신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고소득국가로 분류되어있고, 건강보험재정이 바닥나지 않았으니 선진 7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일본)의 가격을 기준삼아 약값을 정해야한단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인데 2만달러가 넘는 약값을 감당하라는 로슈의 의도는 분명하다. 건강보험제도가 우리에겐 사회연대적 보호막이지만 제약회사에게는 바닥이 날 때까지 쥐어짤 수 있는 돈창고일뿐이라는 것. 생명보다 더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신약 개발하고 임상시험 하는데 막대한 세금혜택과 공적지원을 받지만 약을 팔 때는 돈 외에 환자생명따윈 고려하지 않는다는 걸 ‘특허권’으로 정당화한다는 것.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누구도 문제 삼지 못하도록 전 세계를 특허만능주의로 만드느라 돈을 쳐바르고 각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제약회사가 하찮게 여긴 생명들은 제약회사에게 ‘동정’을 구하는 게 아니라 ‘특허에 의한 살인을 그만 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