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세상네트워크에서는 2025년 11월 10일 오후 7시, 서울시 위기청소년 건강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서울시립 10대 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2025년 7월 갑작스럽게 폐쇄되면서 시작된 문제의식에서 마련되었습니다. 10년 이상 여성 청소년들의 건강과 돌봄을 지원해온 기관이 예고 없이 문을 닫게 되며, 그동안 센터를 이용해 왔던 많은 청소년들이 돌봄의 공백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청소년들의 건강권과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 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최근 여러 사회서비스 기관들이 폐쇄되거나 예산이 축소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청소년 지원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이번 토론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여성청소년 건강지원단 ‘나는봄’에서 활동하고 계신 여성의학과 전문의 이영희 님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님께서 발제를 맡아 주셨습니다.
위기청소년의 건강지원 - 발제: 이영희 (여성청소년 건강지원단 나는봄)
이번 발제에서 이영희 선생님께서는 위기청소년의 건강지원을 주제로, 위기청소년의 개념과 발생 요인부터 현재의 관리 시스템과 그 한계, 현장에서 마주한 실제 사례들, 그리고 해외 여러 국가에서 운영 중인 지원 체계까지 폭넓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요 발제 내용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위기청소년의 정의 및 요인
위기청소년은 가정 해체, 학대·방임, 빈곤, 학교 부적응, 비행 등의 이유로 사회·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정과 사회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해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이 위협받는 9~24세 청소년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다양한 위험 요인 속에 놓여 있으며, 보호체계의 부재로 인해 건강권이 쉽게 침해될 수 있는 집단입니다. 이러한 위기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가정적·개인적·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 가정적 요인: 가정 내 갈등, 폭력, 이혼 또는 양육 기능 상실, 다문화가정의 양육 어려움 등
- 개인적 요인: 우울감·불안감, 학업 스트레스, 진로 고민, 또래 관계의 갈등 등
- 사회적 요인: 입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의 학교 밖 유출, 위험 요인 노출, 도움 요청 창구의 부재 등
▶ 현재 관리 시스템과 한계
이영희 님은 우리나라에 1388과 같은 청소년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여러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러한 지원 체계의 인지도가 낮고, 알더라도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낙인이 남을까 두려워 이용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자살·자해 시도 수치가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에 포착되지 않는 위기청소년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의 체계가 위험 신호를 충분히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지금의 청소년 관리 시스템은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나는봄’과 같은 의료지원 기관은 위기청소년의 현실에 잘 맞는 모델이었다고 평가하며, 귀중한 진료 자료와 함께 기관이 폐쇄된 점이 매우 안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 요구되는 의료지원
위기청소년에게 필요한 의료지원은 단순한 치료에 그치지 않고 조기 발견과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접근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습니다. 특히 성매개 감염이나 자궁경부암의 전암성 병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건강 이슈는 정기적인 검진과 예방적 개입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위기 상황의 청소년에게는 의료·심리·사회적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료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체계가 마련되어야 청소년들이 낙인의 두려움 없이 필요한 도움을 제때 받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아울러 청소년들이 임신이나 성 관련 문제를 겪고 있어도 주변의 시선이나 제도적 제약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도 지적되었습니다. 비밀이 보장되고 부모 동의 없이도 접근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으며,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병원 진료나 임신중단 지원이 부모 동행을 요구하는 구조여서 실제로 의료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문제도 함께 제기되었습니다.
▶ ‘나는봄’ 실제 케이스
실제 ‘나는봄’에서 만난 사례들은 위기청소년이 얼마나 복합적인 어려움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폭력을 피해 가출한 뒤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던 청소년, 쉼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려 다시 위험에 노출되는 청소년, 장애와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지만 지역 내 지원체계에 접근하지 못해 치료가 지연된 사례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또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동행이 없으면 의료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제도적 한계 때문에, 임신·성 관련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청소년에게 비밀이 보장되고 접근이 쉬운 의료·상담 지원체계가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되었습니다.
▶ 해외 지원 시스템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청소년을 위한 보편적·접근성 높은 의료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스웨덴은 전국에 약 265개의 유스 클리닉을 운영하며, 만 23세 미만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웃리치, 전화, 온라인을 통한 상담과 예약이 가능하고, 피임 상담, 성병 검사, 임신중지 연계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합니다. 또한 공공의료 서비스 서버를 통해 의료기관의 수진 내역은 확인할 수 있지만, 유스 클리닉에서 제공한 진료 내역은 다른 기관이 열람할 수 없습니다.
- 일본의 경우 스웨덴의 모델을 참고해 만든 민간 유스 클리닉이 전국에 약 60곳 운영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증이나 보호자 동행 없이도 이용할 수 있으며, 성·연애 문제부터 폭력 피해까지 다양한 고민 상담을 제공하고 대부분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미국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메디케이드와 CHIP과 같은 공공의료보험을 통해 청소년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 체계를 갖추고 조기 발견과 개입을 중요하게 다루며, 일부 주에서는 청소년이 부모 동의 없이 성 관련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 호주는 만 15세 이상이면 본인 명의의 메디케어 카드를 발급받아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만 16세 이상은 부모 동의 없이 피임, 성병 검사, 임신 관련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소득이나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의료체계를 운영하며, 청소년 친화성과 비밀보장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 정리
이영희 님은 위기청소년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은 의료, 상담, 심리치료, 자립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소득과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공공의료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부모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청소년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하며,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청소년 친화적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위기청소년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원의 문턱을 낮추고 신뢰할 수 있는 공공 의료·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위기청소년의 건강권과 안전망에 대한 정책적 제언 - 발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
허민숙 님은 먼저 나눔보듬센터 폐쇄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파악과 대응이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한 안타까움과 책임감을 표하며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국내 위기청소년 지원 체계의 구조적 문제와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현황과 과제를 설명했습니다.
▶ ‘가정 밖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과 데이터 부족
2021년부터 정부는 ‘가출 청소년’이라는 용어 대신 ‘가정 밖 청소년’을 사용하며 문제의 원인을 청소년 개인이 아닌 환경적 요인에서 찾겠다는 방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정 밖 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국가 차원의 공식 통계가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는 다음 두 가지뿐입니다.
- 경찰청 실종아동 신고: 9~17세 기준 약 23,711명
- 청소년 가출 경험률 조사(성평등가족부): 가출 경험률 3.0% → 약 117,984명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실제 보호 체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제도적 공백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가출·이탈의 주요 원인: ‘부모와의 문제’ 압도적 증가
가출 사유를 묻는 조사에서 부모와의 문제가 70.2%로 가장 크게 증가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신체적·언어적 폭력 등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쉼터 이용 청소년의 조사에서도, 신체적 위협을 경험한 비율이 72.1%, 언어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72.9% 과 같이 높은 비율이 나타났습니다.
▶ 쉼터 이용률 3.76%… 대부분의 청소년은 거리로 밀려남
가정 밖 청소년 중 쉼터에 실제 입소한 비율은 3.76%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은 친구 집을 전전하거나, 더는 머물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지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반복된다고 합니다.
- 부모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쉼터 입소 자체를 포기
- 하룻밤만 머물고 바로 퇴소하는 경우
- 신분 확인 절차를 견디지 못해 떠나는 청소년
-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 안전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경우
허민숙 연구관님은 현 체계가 청소년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위험에 더 깊이 밀어 넣는 구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해외의 기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 보장이 우선”
여러 국가의 사례를 소개하며, 공통적으로 청소년 본인의 의사만으로 쉼터 입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미국(캘리포니아): 12세 이상 청소년에게 쉼터 입소 결정권 부여
부모가 학대·방임했거나 청소년이 위험에 처할 경우 부모 동의가 필요하지 않음.
- 미국(미주리주): 16~17세 청소년은 주거·근로·의료 등 주요 생활 관련 법률행위를 자체 결정 가능.
- 영국: 16~17세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은 가장 우선적으로 주거 지원을 제공.
- 일본: 보호자 동의 없이 쉼터 이용 가능하도록 법 개정.
- 호주(Headspace): 청소년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심리·의료·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며,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운영.
이러한 해외 사례는 청소년 보호의 기준이 부모의 권한이 아니라 청소년의 안전과 자기결정권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 필요한 변화: 법·제도 개정과 공공 지원 확대
허민숙 님은 한국에서도 다음과 같은 제도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우선, 청소년복지지원법과 실종아동법을 개정하여 청소년이 부모의 동의 없이도 쉼터에 안정적으로 입소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정부가 민간 청소년 지원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기존의 나눔보듬센터와 같은 모델을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해 청소년들이 지역에 관계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허민숙 님은 이러한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관련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이가희 나는봄 활동가, 김효경 평화의샘 전 활동가, 이도연 건강세상네트워크 기획위원께서 차례로 의견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는봄' 사례로 본 위기 십대 여성의 건강권과 서울시 사회서비스 공공성 후퇴
- 토론: 이가희 (나는봄 활동가)
이가희 님은 이번 토론에서 '나는봄'의 폐쇄 과정, 그 안에서 드러난 위기청소년 지원체계의 문제, 공공 위탁 구조의 한계, 그리고 청소년 인권 침해 사례 등을 중심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봄'은 2013년 설립된 전국 최초의 10대 여성 청소년 의료 지원 기관으로, 서울시 조례에 근거해 운영되었습니다. 산부인과, 치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무료로 제공했으며, 보호자 동의 없이 청소년이 스스로 찾아와 치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접근 모델이었습니다. 또한 의료 지원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 맞춘 생활지원·심리지원·교육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제공해 청소년 회복의 안전망 역할을 했습니다.
▶ '나는봄' 이용자 유형
'나는봄' 이용 청소년들은 성·생식 건강 문제, 정신건강 문제, 가정폭력 및 돌봄 공백, 학교 중단, 빈곤, 온라인·오프라인 폭력 등 여러 위기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온라인 상담 데이터를 보면, 임신·피임·성병 등 성건강 관련 고민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어, 청소년의 건강권 사각지대가 매우 넓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청소년이 보호자 동의 없이 마음 편히 접근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이 핵심적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 '나는봄' 폐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
폐쇄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우선 불투명하고 조급한 폐쇄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위탁 법인은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구두로 위탁을 포기하겠다고 통보했고, 서울시는 이용자들에게 폐쇄 사실을 불과 한 달 전에야 안내했습니다. 결국 2025년 7월 4일 사업이 갑작스럽게 종료되면서, 매일 센터를 이용하던 청소년들의 안전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폐쇄의 근거 역시 타당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이용률 저조’를 이유로 들었지만, 이는 신규 등록 인원을 365일로 단순 나눈 0.8명/일이라는 왜곡된 수치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매주 30~40명, 연간 1,000명 이상이 진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과 맞지 않는 평가였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지방재정평가에서 ‘미흡’으로 나온 특정 항목만 선택적으로 발췌해 폐쇄 근거로 삼은 점도 정당성에 의문을 남겼다고 설명했습니다.
▶ 청소년 인권 침해 문제
폐쇄 과정에서는 이용자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사례도 이어졌습니다.
우선 연계 기관 안내의 부실함이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서울시가 대안으로 제시한 기관 대부분은 성매매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설이었고, '나는봄'처럼 의료 지원 기능을 갖춘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청소년은 병원 방문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으며, 연계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노출되어 본인이 수치심을 느꼈다고 호소한 사례까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12년간 축적된 의료·상담 기록 처리 과정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서울시는 처음에 아무런 지침 없이 “파기 예정”이라고만 밝혔으나, 언론 취재가 이루어지자 갑자기 “보존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당초 이용자 동의서에는 ‘사업 종료 시 파기’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이용자에게 기록 보존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채 민감한 기록이 처리될 뻔한 상황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 시민의 힘으로 다시 열린 '나는봄'
폐쇄 이후 종사자들과 청소년들의 요구로, 2024년 8월 ‘나는봄’이 시민들의 힘으로 비영리 독립기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는 매주 산부인과 진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존 이용자 약 40여 명이 다시 안정적으로 의료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나는봄' 폐쇄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주·미등록 청소년과 성소수자 청소년까지 폭넓게 포괄하는 지원체계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정책적 제언
이가희 님는 다음과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우선, 청소년 지원 정책의 프레임이 성매매 피해자 중심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모든 위기청소년을 포괄하는 보편적 건강권 중심의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권이나 시장 변화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청소년 건강권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청소년의 의료 접근권이 종교나 민간 법인의 가치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도덕적 판단과 무관한 인권·건강 중심의 서비스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탈가정 청소년에 대한 현장의 견해와 지원 과제 - 토론: 김효경 (평화의샘 전 활동가)
김효경 님은 탈가정 청소년을 지원하는 실무자의 시각에서 현장의 어려움과 제도적 한계를 중심으로 의견을 나눠주셨습니다.
김효경 님은 학대·방임 등으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당장 먹고 잘 곳도 해결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쉼터가 있음에도 많은 청소년이 이용을 망설이는 이유로는 자신의 상황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 입소 후 규칙과 소속감에 대한 압박, 부모 동의를 요구하는 제도적 장벽 등을 꼽았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친구나 지인 집을 전전하거나 팸과 같은 임시 공동체에서 지내며 범죄와 착취 위험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현장 사례를 통해 부모 동의가 필수인 의료·입소 구조의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정신적 위기로 즉각적인 입원이 필요했던 청소년이 있었지만,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입원하지 못한 사례를 들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이 버려졌다는 감정과 도움을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무기력감을 겪어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무자 역시 청소년의 위기 대응과 다른 청소년들의 정서까지 살펴야 하는 어려움에 놓이게 되어, 현재 구조의 한계가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습니다.
쉼터가 완벽한 공간은 아니지만, 일정한 거주 공간에서 보호를 받고 또래 및 실무자·전문가들의 지지 속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단체 생활의 규칙과 구조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많은 청소년이 입소를 망설이고 있으며, 실제 입소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이어 쉼터를 이용하지 않거나 이용이 어려운 청소년들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대안적 보호체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보호 시스템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하며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위기청소년 지원체계 운영 방식으로서 돌봄 - 토론: 이도연 (건강세상네트워크 기획위원)
최근 서울시는 '나는봄'에 이어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의 운영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직접적인 의료지원 외에, 아이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사회적 지원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이 남았습니다. 이도연 님은 '나무'에서의 건강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청소년 건강권의 본질을 짚어주었습니다.
위기청소년, 특히 여성 청소년이 겪는 건강 문제는 그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 환경이 만든 질병: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생활은 소화기 장애와 만성 피로를, 불안정한 잠자리는 근골격계 질환과 불면을 초래함.
- 폭력의 흔적: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위협 속에 노출된 아이들은 월경 불순과 자궁 건강 등 성·재생산 건강상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
- 차별의 무게: 특히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차별과 혐오로 인해 지원 기관조차 신뢰하기 어렵고, 결국 더 깊은 사각지대로 배제되고 있음.
현재의 지원 체계는 오히려 가장 취약한 청소년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 보호자 연락 원칙: 탈가정의 주된 원인이 '가정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입소 시 부모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원칙은 청소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로 작동.
- 경직된 기준: 지원할 수 있는 내용과 항목을 정해놓고 그 기준밖의 청소년은 배제함.
이도연 님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사이토 준이치의 ‘민주적 공공성’ 개념을 인용하며, 위기청소년 지원에서 ‘친밀권’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공공성이란 단순히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개인의 욕구와 경험이 안전하게 드러나고 공통의 담론이 형성되는 관계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도연 님의 발제는 위기청소년 지원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효율적인 행정이나 관리 중심의 제도가 아니라, 신뢰와 돌봄에 기반한 다정한 관계임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끝으로 그는 청소년을 존중하는 지원을 위해 청소년들이 호소하는 건강상의 문제를 단순히 치료가 필요한 일로 환원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질병 치료 자체는 필요하지만, 치료적 결정에 앞서 청소년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경험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원칙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공공의료와 공적 사회서비스 제공을 넘어, 지원체계의 운영 원리로서 돌봄이 중심에 놓여야 하며, 건강에 대한 지원이 청소년과의 관계맺기, 정서적 지지, 일상적 지원과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관계맺기의 과정 위에서 건강권 보장과 적절한 의료적 개입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