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고 있던 방사능 공포, 이제 시작이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방사능 계측기를 들고다니는 사람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핵사고의 공포는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져가고 있지만, 후쿠시마 핵사고로 핵문제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특히 방사능 유출문제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관심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이들도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 그중 대표적인 이들이 방사능 계측기로 자신의 주변을 측정하는 이들이다. 이미 체르노빌과 각종 핵무기실험의 낙진을 경험한 미국, 일본의 시민들에게 방사능 계측기는 낯선 물건이 아니다. 미국의 Radiation Network나 일본의 R-Dan 등은 방사선계측기를 갖고 있는 개인들이 자신의 측정치를 올려 정부의 발표치와 다른 측정과 해석을 내놓는 모임들로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뒤늦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을 우려하는 많은 시민들이 방사능 계측기 구입에 나서 국내 수입물량이 며칠이면 다 소진되었다는 소식이 인터넷상에는 많이 올라고 있다. 이들은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의 건강을 우려해 한 대 100만원에서 150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계측기를 구입하여 자신의 주변을 측정해오고 있다.
매일 1시간이면 기준치 절반? 주택가 한가운데라 맞지 않는 설명
노원구 월계동의 방사능 도로도 이런 이들의 활동을 통해 발견되었다. 지난 11월 1일 저녁. 한 시민이 소방서에 신고하면서 시작된 노원구 월계동 도로 아스팔트 방사능 오염사건.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조사결과로는 최대 1.4μSv/h의 방사선이 측정되었고, 방사선원으로는 세슘137이 검출되었다. 서울의 대기중 평균 방사선량이 0.10μSv/h 정도이니 대략 14배의 방사선이 측정된 것이다. 더구나 세슘 137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사선 물질로 이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외부에서 핵물질이 섞여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월계동에 이 곳 이외에도 2군데 방사능 도로가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들을 정밀조사한 결과 도로의 아스팔트에서 최대 35.4Bq/g의 세슘137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원자력안전법상 방사능 관리대상의 최소값이 10Bq/g 이므로 이 아스팔트는 ‘저준위 핵폐기물’로 분류되어 관리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스팔트가 2000년 시공되어 10년이상 주택가 바로 앞에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핵산업계 인사들로 구성되어 공평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정도 방사선량이면 매일 1시간씩 해당 장소에 서있어도 기준치의 절반 규모의 방사선량밖에 받지 않는다며, 이번 방사능 발견의 의미를 축소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현장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그건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주택가 한가운데, 초등학교 통학로에 위치한 이 길은 동네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들며, 아이들이 뛰어노는 전형적인 동네 골목이다. 그리고 아스팔트는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어 공기 중으로 비산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위험이라도 1차적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10년이상 주택가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주민들이 어떤 건강피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1994년대만, 2011년 경주, 포항 반복되는 도로 방사능 오염문제
문제는 이러한 도로 오염문제가 처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4년 대만 원자력위원회는 타오위안시(桃園市) 시내 도로에서 비정상적인 방사선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발표했다. 당시 최고 피폭선량은 1.7μSv/h 였다. 이후 정밀조사 결과 모두 7개도로. 길이 2.5km에서 방사능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발견물질은 토륨, 우라늄, 칼륨 등이었다. 이후 역학조사를 통해 드러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만 원자력연구소에서 토륨 추출을 하기 위해 모아놓은 중사(重砂)가 분실되어 이것이 도로 자재로 사용된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제대로 폐기처분되어야할 물건이었지만, 관리의 허점이 생기면서 어이없게 도로의 건축자재로 사용된 것이다. 방사성 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생긴 이와 비슷한 사고 사례는 상당히 많다. 폐기되어야할 방사능 오염 철근이 고철로 팔려 건축자재로 활용되어 병원, 학교, 아파트 등에 사용되는가하면, 항암치료에 쓰이던 세슘이 고철로 팔려 브라질에선 11만명이 피폭 당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올해 4월, 경주와 포항의 도로에서 세슘이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이것이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날아온 것이 아니며, 큰 위험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권고방침만 발표하고 말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부 도로는 중저준위 핵폐기물로 분류되어야할 10Bq/g을 넘는 방사능을 띠고 있었고, 왜 이 도로에 세슘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한 역학조사도 자료가 없다는 말로 그냥 마무리되었다. 결국 일부 방사선 준위가 높은 일부도로를 제외하고는 세슘 도로는 그대로 방치되고 있고, 역학조사가 진행되지 않음에 따라 또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을 언제라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역학조사가 필수적이다
이번에는 일반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우연히 방사성 물질을 발견했지만, 언제까지나 시민의 참여에 기댈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발벗고나서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역학조사를 진행할 차례이다. 월계동과 비슷한 시기, 같은 건축자재를 사용한 곳이라면 어디나 세슘137이 발견될 수 있다. 또한 그 농도는 이번에 발견된 곳보다 더욱 높을 수 있다. 또한 매일 도로 포장공사를 진행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1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세슘137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한 치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뒤늦게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이 나서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 조사가 얼마나 충실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전하니까 괜찮다”는 전제가 아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자세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인 원인규명과 문제해결이라는 사실을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정부는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끝)
* 관련기사: 생활방사선, 어디서나 끊임없이 나온다 (경향신문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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