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논평

제목[연속기고2] 소통을 위한 노력, 모두의 건강권을 이야기 하다.2014-02-28 00:00


  
 " 소통을 위한 노력, 모두의 건강권을 이야기하다"


    

    : [건강권에 관한 서울 시민회의 후기] 



     남웅(건강권에 관한 서울시민회의 퍼실리테이터)

 




지난 12월 <건강권에 관한 서울시민회의: 서울시민, 건강권을 선언하다! 쪽방 주민의 삶을 중심으로>(이하 시민회의)가 진행되었다. 시민회의는 건강권 전문가나 쪽방 주민이 아니지만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여 쪽방주민의 삶을 바탕으로 건강권을 숙의(熟議)하고 최종적으로 ‘서울시민 건강권 선언문’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필자는 실무를 맡고 있는 지인 활동가의 추천으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맡게 되었다. ‘촉진자’로도 부르는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숙의과정에서 논의에 개입하지 않되 의견을 원활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시민패널들의 언어를 조율하고 의견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시민회의는 3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회의에 참여한 13명의 패널들은 성별, 연령을 고려하여 사전에 선발되었다. 이들은 4번의 만남을 갖고 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선언문 작성의 준비를 다졌다. 첫 번째 만남에서 패널들은 시민회의를 위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이어 두 번째 모임에는 동자동 쪽방촌을 둘러보고 방문간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이어서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인권 및 사회복지 제반 교수진들에게 인권과 건강권, 복지와 제도에 관한 강연을 들으며 질의응답을 주고받았고, 일련의 논의과정을 거쳐 마지막시간에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지만 모든 것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먼저 시민회의의 ‘긴 이름’이 예고하듯 참가자들은 회의의 취지를 정립해나가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기실 ‘쪽방 주민의 건강권을 중심으로 서울시민들의 건강권을 선언한다.’는 구호 속에는 짚고 넘어가야할 키워드가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시민회의는 쪽방 주민들의 건강권만 이야기하는 건지, 서울시민의 건강권을 이야기해야하는 건지, 왜 내가 그들의 건강권을 논해야하는 건지, 왜 정작 여기에 쪽방 주민들은 참여하지 않는 건지에 대해 패널들의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일련의 혼란은 회의 진행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첫 모임에서 필자는 조를 나눠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과정을 진행했다. 헌데 선언문 작성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논하는 자리에서 조별로 내놓은 결과는 이들이 다룬 범주부터 달랐다. 일테면 한쪽은 건강권을, 다른 한쪽은 쪽방주민의 삶을, 그리고 다른 한쪽은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내놓은 것이다. 게다가 토론을 진행하는 중에도 패널들은 발표 내용들을 정리하기에 앞서 주제에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했다. 결국 첫 회의시간은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채 물음표 가득한 마무리로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확인할 수 있듯이 첫날 정리되지 못한 각각의 조별기록들은 이후 건강권 선언문을 구성하는 항목을 예고한다.  



시민회의는 참여자들에게 특별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그들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도록 했다. 그리고 패널들의 솔직하고 열의 있는 질문들은 당사자들을 만나고 전문가들에게 건강권 전반을 배우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방향을 잡아갔다. 다시 말해 참여자들의 논의과정은 곧 시민회의의 윤곽을 다듬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일례로 논의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패널들의 관심사가 변하고 있음을, 더불어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들도 바뀌고 있음을 체감했다. 일례로 첫 모임에서 많은 패널들은 쪽방주민들의 건강권을 위해서 그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쪽방의 열악한 환경을 둘러보고 쪽방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널들은 주민들이 의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조차 제공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전문가들로부터 건강권이 무엇이며 어떤 제도들이 있는지를 들으며 언어를 다듬어나갔다. 쪽방 주민들의 삶을 바탕으로 건강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록 패널들이 비당사자일지라도 (혹은 비당사자이기 때문에) 각자의 개별적인 요구를 넘어 특수한 이들의 삶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건강권을 이야기하는 과정일 터, 이는 시민패널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논의를 진행하며 필자가 정리할 수 있었던 시민회의의 취지였다. 



매 차례 숙의과정을 거치면서 패널들은 쪽방주민의 건강권과 함께 호흡을 맞춰나갔으며, 그 사이 이들의 언어는 물음표에서 마침표로 바뀌며 단단해져갔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연령대, 다른 관심사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패널들의 언어는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시간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은 패널들의 언어가 하나의 문장으로 모아져야 했기에 여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았다. 회의장은 흡사 서로의 생각과 언어들이 부딪히는 전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몇 시간이 지나도 선언문작성은 더디기만 했고, 서로가 지친 와중에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허투루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패널들의 추천으로 선언문작성과정을 진행한 시민패널은 참여자들의 의견들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한 편의 선언문이 나왔다. 선언문은 시민패널이 생각하는 건강권, 시민의 건강권을 위해 필요한 요구들, 보편적인 건강권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하여 서울시민과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권을 위한 권고로 구성된다. 



선언문의 문장들은 그간의 시민회의가 전개된 흐름과 패널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편의 선언문이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한정적인 조건 아래서 완결된 텍스트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만족을 충족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완전성이야말로 지속적인 노력을 들여 의견을 모으는 ‘민주주의’의 동력이 아닐까.



건강권은 여러 갈래의 의미를 갖기에 하나로 종합하거나 수렴시켜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한다. 건강의 범주만 하더라도 신체적·물리적 건강 뿐 아니라 정서적, 관계적, 경제적, 사회적 건강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건강권이 나와 당신의 삶에 존엄성을 보장하는 권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면, 건강권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곧 나의 건강한 삶을 위한, 그리고 당신과 함께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구일 수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는 건강한 공동체를 전제로 하고, 반대로 건강한 공동체를 목표로 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건강권을 이야기하면서 패널들이 중요하게 의미부여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타인과의 관계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민회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민주체로서 서울시민의 건강권을 선언하고 쪽방주민들의 건강권을 권고하는 시민회의의 과정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에게 귀 기울여 언어를 조율함으로써 다시금 우리를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타협과 협의의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지라도 공동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정치적 무게를 가질 수 있다. 더불어 집단의 목소리를 만드는 시도는 이슈에 대한 사회적 주체로서의 참여와 소통의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쪽방주민의 생활환경을 통해 서울시민의 건강권을 숙의한 시민회의는, 시민대중들이 의식을 다듬고 목소리를 모아내는 채널의 역할을 갖는다. 특정 집단을 만나 그들의 삶을 살펴보고 필요한 것들을 찾아 배우며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공동의 언어를 다듬는 시도는, 소통을 거부하고 비정상과 정상을 나눠 비정상의 대상들을 사회의 끄트머리로 몰아내는 사회에서 시민들이 시민으로서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실천이다. 시민패널을 모으고 현안을 숙의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쉽지 않음을, 그럼에도 피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선택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의견들을 이끌어내고 조율하는 촉진자로서 필자의 노력이 있었다면 그들의 의견을 되도록 지나치거나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음을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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