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백주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지난 1월 23일 울산에서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 주재 타운홀 미팅에서 경제성 예비타당성 조사 앞에 좌초된 울산의료원 설립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대통령은 질문을 한 전문의가 공공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드문일이라는 간접적인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성남시장 시절 경험을 토대로,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지자체의 돈으로 지으면 정부의 예비타당성 결과와 상관없이 설립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공공의료의 지방자치단체 책임성을 강조한 측면에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고 또한 올해 있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중요한 이슈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방의료원 입장에서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지금부터 왜 절반만 맞는 말이고 그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자.
왜 공공병원을 짓지 못했나
대한민국 산업수도라 불리는 울산. 그러나 이 도시는 전국 광역시 중 공공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 현 울산시장 이전에 재임한 더불어민주당 출신 송철호 시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울산의료원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송 시장은 약 2천억 원을 투자해서 2025년에 최대 500병상으로 울산의료원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 부적격 판정으로 결국 짓지 못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의료원을 짓겠다고 공약을 해도 결국 설립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기획재정부가 지난 2023년 울산의료원 설립 계획에 내린 최종 판결은 투입 비용 대비 경제적 편익이 낮아 설립이 부적격하다는 것이었다. 울산의 인구 감소 추세와 병상 규모의 과도함 등을 지적하며, 국비 1061억 원, 지방비 1746억 원 등 총 2805억 원의 예산 투입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결과는 윤석열 정부 시기 판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윤석열 정부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공공병원에 대해 사실상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예비타당성 조사에 그 관점이 압축돼 있다. 공공병원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은 2023년 경실련이 선정한 필수의료 취약 광역지자체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2023년 4월 경실련 보도자료 참조, https://ccej.or.kr/posts/latzjd). 더구나 이때는 코로나19라는 몸살을 겪고난 직후 한국사회가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다. 최소한 광역지자체 정도 되는 넓은 범위의 지역에 공공병원 하나 없어서 신종감염병 대응에 문제가 없도록 하자는 취지로 공공의료에 대해 강조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잠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공공병원에 관한 역사에서 어두운 페이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해 경상남도는 103년 역사의 진주의료원을 전격 폐업했다.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강성 귀족 노조'와 '적자 누적'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국정조사 결과,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중 적자가 아닌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진주의료원의 부채는 오히려 평균 이하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독립채산제였다. 중앙정부는 1980년대 이후 지방의료원을 지자체로 이양하면서 재정 지원을 대폭 줄이고 자체 수익으로 운영하라고 법률에 명시했다(지방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2조 1항 등 : 당기순손실 3년 연속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장 등 임원의 해임과 조직개편을 요구할 수 있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지방의료원을 설립하고 싶을까? 이미 있는 지방의료원도 관련 법률에 기초해 볼 때 당기순손실이라는 적자를 면할 수 없어 언제든 비판의 대상이다. 더구나 실력 좋은 의사들은 대도시 수도권 등에서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는데 지방에 그것도 공공병원에 일하러 올까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중앙정부에서부터 공공병원은 적자가 커서 사회적 이득도 제대로 거두지 못한다고 비관하고 있는데 지방정부에서는 공공병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공병원들을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사업을 하려면 적자를 생각하면 안 되는데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있을지부터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규모가 작거나 혹은 땅값 등 투자비가 적게 드는 변두리에 짓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렇게 적자로 비난받는 병원에 어떤 의사가 쉽게 오겠다고 결심할 수 있겠는가? 그런 공공병원을 어느 지자체가 설립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코로나19가 드러낸 공공의료의 허약함
코로나19는 그동안 한국의 보건의료제도가 특히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공공성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일차의료가 부족해서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부족했고 공공병원 숫자도 지역마다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그나마 있던 공공병원들도 대부분 중환자 진료 역량이 부족해 중증환자가 많아지는 위기의 순간에 제대로 대응하지 했다. 더구나 심각한 인구고령화와 지방인구 감소로 지방의료체계가 무너지는 상황에 이르러 공공병원의 중요성은 그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공공병원이 설립되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난한 과정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공공병원이 필요한 지역에 몇개 더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사회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성에 대항하는 공공성 체질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이관은 공공의료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과거 지방의료원의 내무부→복지부 이관 때도 비슷한 기대가 있었지만 실질적 변화는 미미했다. 중요한 것은 소관 부처가 아니라 독립채산제라는 구조적 족쇄를 푸는 것이다.
'돈을 얼마 벌 수 있는지'로 평가해선 제대로 된 공공병원 설립도 운영도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제도는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이제 지역의사제가 시행된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교육과 수련을 받고 또 일할 것인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역완결의료 추진과 지역의사제 지원 의사들의 교육 훈련 및 복무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공공병원이 돈 버는 곳이라는 신호를 주면 그들이 과연 10년이라는 의무복무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계속 일하려고 할까?
먼저 공공병원을 수익성으로 평가하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공공병원 설립에 예타문제를 경제성이 아닌 주민건강수준 향상의 효과성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병원 설립 예비타당성 평가를 기재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과학기술분야의 연구개발예산 예비타당성 평가를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이 하도록 하고 있다. 아마도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의 전문성을 고려하는 것이자, 과학기술 성과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효과는 오랜 시간 뒤에 나온다는 걸 고려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공공병원에 대한 평가도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다음 두 가지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공공병원 예비타당성 평가 권한을 기재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고, 평가 기준을 경제성에서 주민 건강수준 향상 효과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는 지방의료원법 제22조 독립채산제 조항을 삭제하고, 공공병원을 '돈 쓰는 곳'으로 인정하는 재정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울산의료원 좌초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을 국가에 던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