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을 잃으면 온 세상을 잃는 것이라는데.... 정은일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 건강을 잃은 한 개인에게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위의 말은 인간 사회에서 항상 회자되는 말이고, 그래서 건강이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이라는 데 이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최근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산업이 되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의료기관, 보험회사 등과 관련된 수많은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개인들은 상업주의와 소비주의에 따라 악화되는 삶의 환경에서 자신의 건강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광고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다. 국민의 보건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도 이런 표현을 한다. 하지만, 과연 삶의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의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올바른 지식에 따라 도움을 받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 유엔의 사회권 규약에 가입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인 대한민국에 그런 사회적인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가? 빈부의 차에 관계없이 건강이 동일한 내용과 조건으로 작용하는가? 동일한 조건으로 출발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에서 건강의 문제로 그 조건조차도 악화되고 있다면 사회와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아니,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구조를 갖추기 위한 고민은 가지고 있는가? ‘가난은 죄가 아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 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왔다. 하나는 그러니 ‘열심히 살면 희망이 보일 것이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다’는 권력을 가진 집단의 이데올로기이다. 현실은? 가난한 사람이 물질의 가난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가? 모두가 함께 가는 희망의 21세기, 비전 2030을 말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수출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자축하는 나라에서.... ‘모두가 함께 행복한 미래’를 위해 TV에서 보여주는 나라와 그 나라에서 사는 행복한 국민과 가난한 ‘나와 내 새끼’는 관계있는가? 희망은 있는가?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까? 백번 양보해서, 그런 꿈을 위해 힘들지만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권유라도 했던가? 대한민국은 ‘민주화’되었단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접근에서 이 ‘민주화된...’이라는 말은 그냥 깔고 가는 명제이다. 그렇게 알고 있나보다. 민주화는 민이 주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과연 언론에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삶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현대국가에서 ‘민주화’는?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그들(만)의 민주화’이지 않은가? 링컨이 북부의 이익을 위해 이미지로 차용한 것처럼...... 우리사회에서 민주는 삶이 아니고 브랜드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전의 ‘보호에서 권리’로 제도적으로 보장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기념하여 그 날을 사회복지의 날로 선포한 국가에서..... 그리고 ‘민주’라는 말과 ‘복지’ 그리고 ‘인권’이 최대의 화두인 나라에서..... 이제 ‘민주’와 ‘복지’와 ‘인권’은 목숨을 걸고 얻기 위해 애쓴 가난한 민중의 바람과는 관련 없는 이미지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인가 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정신에서 보장한 대로 국가가 책임지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제도의 연장에 서 있는 의료급여제도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간다. ‘급여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예산사용의 합리성과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 ‘공급시스템의 문제가 있다’, ‘의료급여 비용 때문에 복지에 쓸 돈이 없다’ 등등..... 그러면 비용을 줄이거나 효율적으로 집행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아니 현상유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말들이 많다. 결론은? 가장 쉬운 것부터 건드린다. 또한 가난한 사람의 현실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책상머리에서 통계만을 가지고, 아니면 특별한 사례를 잡아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갈수록 문제의 해결을 요원해진다. 건강과 복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고 원인 개선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당사자들에게 설득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주먹부터 들이미는 형국이다. 또다시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이다. 복지국가라고 하면 국민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듯, 적게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시장경제 논리가 그 어떤 명제보다도 앞서가는 나라에서 시장경제에 애초부터 편입되지 못했거나 탈락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요 정부가 아닌가? ‘집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2006년 대한민국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아픈 것도 서러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과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의 몸짓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미래의 희망은 당장 ‘오늘 하루 또는 내일’의 미칠 것 같은 벽을 뚫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수십 만 명의 아이들이 굶고, 따라서 그 가족이 굶고, 그러다가 길바닥에 나앉을 것 같은 ‘미치고 환장하겠는’ 오늘......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에 따르지 않고 정치적인 이해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긍정적이지 못하다고들 하지요. 건강에 해롭다고들 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꼬였다고 하고 불만이 많다고 하고 ‘투덜이’라고 웃어버립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미치고 환장’하겠는데.... 건강세상 회원 여러분 ‘함께’ 건강할 꿈을 다시 그려보는 희망을 위해 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