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논평

제목[기고]장애등급제는 차별이다!2012-05-02 00:00
 



장애등급제는 차별이다!


 


남병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1.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차별의 산물


 


장애등급제는 1988년 한국에 도입되어 지금은 한국과 일본에 고유한 것으로, 신체기능의 정도에 따라 장애등급을 나누어 장애인을 분류하고, 복지서비스 제공의 척도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현행 장애인복지제도는 거의 모두가 ‘가구소득’, 그리고 의료적 기준의 ‘장애등급’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데, 한국의 장애인복지제도가 양적 부족의 문제 뿐 만 아니라 복지의 전달방식과 전달체계의 문제도 심각하게 후진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 대해 보조인을 제공한다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경우 대상자는 1급 장애인으로 신청자격이 제한되어 있고, 빈곤한 장애인에 대한 소득보장제도라는 ‘장애인연금제도’는 1급 및 2급 장애인으로 신청자격이 제한되어 있고, 보행이 불편한 사람을 대상으로 운영한다는 ‘특별교통수단’에 대하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조례를 통해 이용자격을 1급 및 2급 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 등이다.


 


문제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1급 장애인과의 상관관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며, 장애로 인해 빈곤하고 소득활동의 기회가 없는 사람은 장애등급과 무관하게 거의 모든 장애인에게 공통된다는 사실이며, 3급 이하의 장애인도 보행이 불편하여 특별교통수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합리적인 것, 또는 불가피한 것이라 항변하고 있다.


장애등급제를 옹호하는 논리는 매우 선명하게 한 가지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며, 바로 그것이 장애등급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최대 과제는 다양한 장애유형에 걸친 ‘의학적 형평성’의 확보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등급은 서비스 필요도와 일치하지 않으며, ‘의학적 형평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이다.


 


 


2. 장애등급제 무엇이 문제인가?


 


장애등급제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계를 왜곡한다.


장애등급제는 의학적 기준으로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겨 낙인을 찍는 것인데, 이러한 ‘낙인화’는 그 자체로 용납될 수 없는 인권침해이다. 예를 들어 노인요양보험제도를 이용하는 노인에게 등급을 매기지 않고 서비스에 등급이 있을 뿐인데, 장애인에게는 행정편의를 위해 사람의 몸에 낙인을 찍은 것이다.


장애라는 것이 애초에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개념에 불과하며 결국 개인과 사회의 관계의 문제인데, 장애등급제는 장애를 개인적이고 의학적인 몸안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기능을 한다.


결국 장애의 사회적관계를 은폐하고 개인의 몸만을 문제시하는 차별의식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를 제한하고 은폐한다.


장애등급은 개별 서비스 필요도와 무관한 행정편의적 기준에 불과하다. 의학계에서조차 판정기준 및 장애유형간 형평성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장애등급이 서비스판정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비판을 하고 있다. (2010년 대한의학회 등)


정부는 장애인복지제도의 확대에 따라 등급심사제도를 만드는 등 기존의 장애등급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07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총 9만3천여건의 장애등급심사 결과 무려 36.7%의 장애인이 등급이 하향조정 되었고, 상향조정된 비율은 불과 0.4%였다. 등급이 하락된 경우 기존에 이용하던 복지서비스가 중단되는 등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정부는 그동안 장애등급이 방만하게 운영되어 온 증거라며 더욱 등급심사를 강화하고 있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계에서는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는 등 장애등급제 폐지투쟁을 강력하게 진행하고 있다.


 


장애등급제는 예산절감을 위한 기계장치이다.


2008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장애인중 약14.5%인 약35만명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신청자격을 1급 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약 5만명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등급제는 이러한 현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2급 장애인이 서비스신청을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환상을 유포한다.


2008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19천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의 5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경증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의 빈곤율 차이는 10%정도밖에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장애인연금제도는 1급 및 2급장애인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장애등급제는 이러한 현실을 철저하게 은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장애인연금과 장애수당을 받는 사람은 55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1%에 불과한 반면, 영국은 전체인구의 7.0%(2004년), 룩셈부르크는 전체인구의 17.1%(2005년)라는 사실은 장애등급제가 어떻게 예산절감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3. 장애등급제 폐지는 현실적 요구


 


장애등급에 의한 서비스제한은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인권에 대한 침해일 뿐이다.


활동보조가 필요한 사람이라도 2급 판정을 받게 되면 활동보조를 신청조차 금지하는 것이 장애등급제이며, 보행이 불편한 사람도 3급 판정을 받게 되면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이 장애등급제이다.


장애등급, 그리고 몸의 기능평가만으로 이루어지는 서비스 사정(assessment)은 장애인의 환경과 역사와 욕구를 무시한 폭력적 행정이다.


같은 1급 시각장애인이라도 점자와 흰지팡이와 주변환경에 익숙한 사람은 직업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중도에 시각장애를 입어 이러한 교육을 받지 못해 혼자서는 방문 밖을 나가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비슷한 신체기능을 가지고 있어도 환경이나 생활조건에 따라 개인의 욕구와 필요한 서비스는 매우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환경과 욕구를 무시한 등급과 의료적 판정체계는 특별한 환경에서 복지서비스를 절실히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다.


 


서비스 필요도의 범주가 아닌 ‘장애인’이라는 범주, ‘장애등급’이라는 행정적 범주 규정이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규정한다면, 개인의 권리는 철저하게 예산의 논리에 잠식당하게 될 것이며, 예산에 의한 서비스 제한과 예산에 의한 권리제한이 정당하다는 환상을 생산한다.


장애인의 수를 줄이거나 장애등급기준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예산절감이 손쉽게 가능하며, 장애인의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당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4. 대안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장애의 사회적 이해와 장애인권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그에 걸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적 장애등급제를 강화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예산절감을 위한 장애등급제가 아니라면, 장애등급과 무관하게 서비스필요도에 대한 사정을 하고,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일이다.


사회서비스에 대해서는, 별도의 사정도구와 체계를 구축하여 서비스 대상과 제공량과 방식 등을 정하여야 하며, 이는 당장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등에서 시행이 되어야 한다.


활동지원제도의 경우 이미 별도의 사정도구와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장애등급제와 충돌하는 상황에서 장애등급을 이유로 이중의 장벽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되기도 한다.


장애인연금과 각종 감면제도와 같은 직간접적 소득지원제도에 대해서는, 직업적 장애개념을 도입한 소득보장정책을 만들면 되며, 그 외의 제도들은 애초에 장애등급과 무관한 사정체계를 만들면 된다.


 


문제는 장애등급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장애등급과 무관한 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어떻게 파악하고 실현할 것인가이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해야 개인별지원체계를 만들 수 있다. 개인별지원체계는 장애인의 삶을 더욱 구체적으로 지원할 뿐 아니라, 장애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놓을 것이다.


장애인은 몇점짜리 몸, 혹은 몸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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