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30년, 두려움과 열사람의 느린 걸음
권미란(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에이즈운동을 하는 이들은 12월 1일을 기점으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결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들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한해를 정리하는 이유는 매년 12월 1일이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HIV/AIDS감염인 인권의 날이기 때문이다.
HIV/AIDS감염인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정부의 의례적인 기념행사를 비판하고 감염인들과 함께하는, 감염인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우리들의 축제를 만들기 위해 2006년 12월 1일에 제1회 HIV/AIDS감염인 인권의 날을 선포한 이래 올해 제 6회 HIV/AIDS감염인 인권의 날을 맞이했다.
2011년 현재 우리의 현실을 한문장으로 말하자면 ‘에이즈30년, 그러나 감염인의 인권은 거꾸로 간다’. 에이즈란 질병이 알려진지 30년이 지났다. 2001년에 유엔이 ‘에이즈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f commitment on HIV/AIDS)’을 한지 10년이 지난 지금을 유엔에이즈(UNAIDS)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작년에 향후 에이즈대응비전으로 3Zeros(신규감염 제로, 에이즈관련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올해 6월 10일에 ‘에이즈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에서 유엔회원국들은 향후 10년을 대비하기위해 에이즈에 대한 새로운 선언문(Political Declaration on HIV/AIDS: Intensifying our Efforts to Eliminate HIV/AIDS)‘을 채택하고, 2015년까지 에이즈치료를 필요로 하는 1500만명의 에이즈감염인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일명 ‘15by15’를 약속하였다. 국제사회는 분주한 반면 한국사회는 조용하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에이즈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에서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박인국 유엔대사는 3Zeros 대응비전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정부의 연설이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반인권적인 한국에이즈정책과 법을 유엔과 유엔에이즈의 권고에 부합하도록 바꾸고, 국제적 약속인 ‘15by15'에 큰 걸림돌이 될 FTA를 중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가 2011년 한국에서 목도한 일은 한국정부의 수사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박인국 유엔대사는 한국에는 출입국통제를 목적으로 한 강제적인 에이즈검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국제적으로 밝혔다. 작년에 법무부 내부지침과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등을 개정하여 표면적으로 이주민에 대한 에이즈강제검사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해보니 그야말로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었다. 또한 에이즈강제검사는 확대되고 있다. 법무부가 재소자에 대한 에이즈강제검진을 법제화하기위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처우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제출하자 복지부는 이에 동의했다. 뿐만아니라 국정감사에서 윤영 국회의원(한나라당)은 외국인 채용시 에이즈검사를 해야하고 에이즈감염인을 마사회에서 채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특수장갑이 없다며 수술을 거부하는 병원, 각혈하는 HIV감염인을 수분동안 방치한 응급구조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보다가 아들이 에이즈에 걸리게 생겼다는 신문광고가 버젓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유엔회원국들의 약속인 '15by15'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 한미FTA를 날치기비준하였다. 한미FTA는 허가-특허연계, 자료독점권, 특허기간확대 등을 포함하는 트립스플러스의 종합판으로 복제약의 출시를 더욱 지연시킬 것이고 약값폭등을 불러올 것이다. 약가제도와 의약품정책을 미국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독립적검토기구, 의약품공동위원회의 설치가 포함되어있다.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투자자국가분쟁제도(ISD)까지 포함한다. 한미 FTA는 지금까지 체결된 의약품 관련 협정 중 전 세계에서 최악이다. 올해 7월에 발효된 한EU FTA는 복제약의 수입과 수출을 막을 수 있는 국경조치가 포함되어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식FTA와 유럽식FTA를 맨 앞에 서서 수출하는 나라가 되려고 한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관통하는 FTA의 견본이 되도록 한미FTA협정안을 기본으로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즉 미국과 한국정부 모두 15by15를 약속했으나 가장 앞장서서 이 약속을 파기하였다.
그리고 박인국 유엔대사는 ‘에이즈에 관한 유엔고위급회의’에서 제10회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이하 아이캅10)가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캅10은 한국정부의 방관과 경찰폭력으로 아이캅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게다가 불법적 사진채증 및 경찰폭력을 자행해놓고 오히려 참가자에게 벌금을 부과하였다. 아이캅10를 통해 한국정부가 그 동안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었으며, HIV감염인을 비롯한 동성애자,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마약사용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저지르고 있는지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년 12월 1일에 온갖 인권침해와 고립감으로 누더기가 된 몸을 내보이며 우리의 현실을 알리고 대책을 촉구했다.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경향신문과 시사인마저 에이즈감염인의 인권현실을 다룬 기사를 올 한 해 동안 내보낸 적이 거의 없다. 보수언론은 ‘감염인 관리 허술’, ‘에이즈감염인, 다수와 성관계 가져’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12월 1일마저도 우리의 목소리는 거의 기사화되지 못한다. 복지부 에이즈담당공무원은 해마다 바뀌어도 대답은 똑같다. ‘에이즈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다’, ‘감염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의 인식수준은 그렇지 않다’, ‘감염인 인권만 생각하다가는 국민들 건강권 놓친다’. 박인국 유엔대사의 연설문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는지 알고 싶어 유엔대표부에 연설문은 어떻게 작성이 된 것인지 질의하자, “연설문은 소관부처로부터 입장을 받아 작성”했다며 문의는 복지부에 하라고 했다. 12월 1일에 복지부 질병정책과 에이즈담당공무원과 면담을 하였다. ‘유엔회원국들이 새로운 에이즈선언문을 채택한 걸 아는지, 한국정부가 3Zeros에 지지표명한 걸 아는지, 한국의 상황은 3Zero와는 정반대방향임을 아는지’ 물었다. 6월 당시에 관련 기사도 거의 없었지만 에이즈담당공무원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박인국 유엔대사는 어느 나라 이야기를 한 것인가?
나는 거의 매년 12월 1일에 울었다. 우리 처지가 너무 슬프고 억울했고, 그렇지만 아득바득 애써온 우리의 모습이 애달파서였다. 올해는 울지 않았다. 대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일년을 돌아본 소회는 ‘벡스코에 갇힘’이다. 그건 두려움이다. 부산 벡스코에서 아이캅10이 열리는 동안 우리는 FTA반대시위를 하였고, 불법채증을 하는 경찰에게 항의하는 와중에 불법연행을 당했다. 목이 쉬어라 연행하지 말라고 외치고 경찰차를 에워싸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온 참가자들은 ‘한국에 민주주의가 있느냐’며 경악했다. 하지만 아이캅10을 취재하기위해 등록한 기자들은 단 한명도 우리의 모습을 눈여겨보지 않았고, 심지어 아이캅10 일간신문에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지역신문은 같은 시기에 대구에서 열리고 있던 세계육상대회를 다룰 뿐이었다. 아이캅10을 주최하고 후원했던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 유엔에이즈, 아이캅10조직위원회도 해운대경찰서에 항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서울에 아는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한진중공업 사태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전야제로 서울에도 날밤을 샐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완전히 벡스코안에 갇혀버렸다. 우리는 스스로 사진과 보도자료를 돌리고 기고를 하고, 연대단체들에게 성명을 내달라고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영원히 벡스코안에 갇힐까봐 두려웠다.
12월 1일 복지부를 마주했을 때 ‘벡스코에 갇힘’이 오버랩되었다. 12월 2일에는 6개의 감염인 단체들이 한사람의 빠른 걸음보다 열사람의 느린 걸음으로 함께 가보자고 ‘한국HIV/AIDS감염인네트워크’를 발족했다. 올해 유일하게 기쁜 일이다. 나는 ‘두려움’과 ‘열사람의 느린 걸음’을 번갈아 떠올리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